새로운 알람 도착
'외롭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 독립성과 상호의존성 사이의 감정, 고슴도치 딜레마를 알아보다(15)
2019-10-15 오전 12:13:30 조회 : 2227


'혼자 있으면 외롭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 우리 모두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이다. 누군가와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가 되길 바라면서도 다른 사람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은 꺼리는 마음. 이런 모순된 감정을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한다. 고슴도치가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싶어 하지만, 가시로 인해 너무 가까이 가지는 못하는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번 기고만장에서는 고슴도치 딜레마를 통해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순을 알아보고자 한다.

 
 
 
 
 
 
 
 
 
온기와 가시 사이의 모순된 감정

 
 
 
 
우리는 사회 속에 살아가면서 수많은 타인과 마주한다. 그리고 사소하게라도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를 고민한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우리가 고민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아지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혼자 있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혼자 있을 때 모든 걱정이 없어지는가? 쉽게 긍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막상 혼자 있으면 또 외롭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독립성과 상호의존성, 반대되는 이 두 가지에 대한 욕망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한다.
 
 
 
 
 
고슴도치 딜레마는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저서 『소품과 단편집(Parerga und Paralipomena)』에서 소개한 우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 고슴도치들은 추운 날씨에 모여서 온기를 나누고자 했지만, 서로의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상처 입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어야 했다. 고슴도치가 가진 이 딜레마는 인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타인과 친밀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거리를 좁혀야 하지만, 거리를 좁히는 동시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율성에 대한 욕구가 증가한다. 이에 대해 아무도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친밀함에 관한 연구에서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라고도 한다. (사진 출처: Pixabay)
 
 
 
 
 
고슴도치 딜레마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정신병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이다. 그는 친밀감에 대해 많이 다루었는데, 『집단 심리학과 자아의 분석(Group Psychology and the Analysis of the Ego)』에서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모든 인간관계에는 ‘혐오와 적대의 감정의 잔여물’이 존재한다며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를 인용하였다. 더불어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도 같은 맥락에서 평범한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극도로 싫어하는 감정을 가지기도 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자신의 자식에 대한 사랑마저도 양가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슴도치 딜레마에 대한 이론적 접근
 
 
 
 
이후 고슴도치 딜레마에 관한 이론적 연구는 더욱 활발해졌다. 성격 이론 측면에서 연구자들은 사람의 성향에 따라 인간관계의 양상이 다르다고 말했다. 고슴도치 딜레마와 같은 성향은 비교적 비관적인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만성불안을 보이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거절당한 이후 반사회적인 성향을 보였지만, 낙관적인 사람들에게는 거절의 경험이 오히려 타인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노력의 강화*로 작용했다. 실제로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비관주의 철학으로 알려진 것을 고려하였을 때, 이는 유의미해 보인다. (사진출처: Pixabay)

*강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과 관계없이 행동의 반응이나 빈도, 강도를 유발하고 증가시키는 자극
 
 
 
 
 
 
다른 이론은 발달적 측면의 설명이다.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친밀함, 상처 등을 받아들이는 양상과 그것을 해결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생애 초기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이다. 보다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했다면 이후의 관계에서 겪는 갈등도 잘 해결해 나가지만, 그렇지 못하면 회피하거나 폭력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즉, 어린 시절 양육자와 관계가 안정적이고 긍정적이었다면 타인의 가시에 찔렸을 때도 회피하거나 고립되기보다는 상황에 맞게 판단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Pixabay)

 
 
 
 
 
더불어 이러한 인간의 속성이 사회에 미친 영향도 생각해볼 수 있다. 조너던 색스는 『사회의 재창조: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을 찾아서』에서 고슴도치 딜레마에 대해 ‘인간 협력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라고 일컫는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과의 교류가 필수이면서도 사적인 공간은 보호받아야 한다. 그래서 서로 교류하고 보호받기 위해 협력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 ‘예의’가 나타난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여겨진다. 서로 상처받지 않게, 혹여나 상처를 받아도 그것이 상호 간에 이해되는 선에서 이루어지도록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오늘날의 고슴도치 딜레마
 
 
 
 
현대 사회는 ‘나’를 중시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리고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SNS 등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확장되었다. 이에 따라 가볍고 피상적인 인간관계가 증가했다. 이로 인해 자율성과 상호의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존재인 인간이 현대 사회에서는 비교적 쉽게 자율성을 택하기도 한다. 1인 가구와 나홀로족* 등의 개념을 고려해도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명확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홀로족: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활동하면서 즐기는 사람들
 
 
 
 
 
이런 맥락에서 새롭게 등장한 말이 ‘신인류 고슴도치’이다. 받은 상처와 별개로 인간관계 자체에 큰 부담을 느끼며 서로 알아가고 신경 쓰면서 시간과 정신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혼자 편하게 지내겠다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소위 '쿨한 관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SNS 사용 경험이 있는 전국 1,000여 명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인간관계 확장에 대한 의지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44.6%였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전체 중 73%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으며, 64.7%가 자신도 타인의 진실한 모습을 잘 알아봐 주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나타났다. (사진 출처: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다시 말해 사회가 변하고 많은 현대인이 혼자 지내는 것을 편하다고 느낄지라도 고슴도치 딜레마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앞서 많은 연구자가 이를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라고 말한 것처럼,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확실히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모순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도널드 위니캇이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양가적인 감정을 연구할 때, 불편한 감정을 스스로 인정한 어머니들이 그렇지 않은 어머니들에 비해 덜 공격적인 성향을 비춘다는 것을 밝혔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모순된다고 느끼는 순간 ‘내가 왜 이러지’라며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특성임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Pixabay)

 
 
 
 
 
 
 
 
 
 
우리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온기와 상처, 이 두 가지가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멀리하기도 하는 건 당연하다. 실제로 쇼펜하우어의 우화 속 고슴도치들은 결국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서로 간의 '적절한 거리'를 찾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리에게도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적절한 거리는 모두 다를 것이다. 나의 다양한 모습을 인정하고 나만의 적절한 거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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